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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의 일

새벽녘의 여름 바다 - 2016

 

여름의 일    - 묵호

연을 시간에 맡겨두고 허름한 날을 보낼 때의 일입니다 그 허름한 사이로 잊어야 할 것과 지워야 할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때의 일입니다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고 걸음이 질척이다 멎고 마른 것들이 다시 젖을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와 침과 욕과 돈을 길바닥으로 내던질 때의 일입니다 와중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니 갈 곳 없는 이들만 떠나가고 머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감고 있는 일로 당신으로부터 조금 이르게 멀어져 보기도 했던,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中

 

 

 

동해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될 무렵 강릉 바닷가에 새로 생긴 호텔을 예약하고 무작정 떠났던 길. 잠도 설쳐가며 어둑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지만 바다와 구름 사이, 가느다란 하늘만이 붉게 변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던 나의 첫번째 동해 일출 보기.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