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nandoah National Park, Virginia - October, 2009
10월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이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기형도
내가 사랑한 시월의 숲은 내 한때의 절망을 기억할까...
처음 사진을 보고 '아름다운 가을 숲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길이 없어서 왠지 무섭게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ㅎㅎ;;
하나도 안 무서운 곳이에요! ㅎㅎ
정말 아름다운 가을의 숲이었답니다. ^^
그곳도 숲의 단풍은 곱군요.
다들 10월의 마지막이라 허망한지 외로운지 다들 가을타는 듯한 느낌인데
정작 저는 월급이 나와서 기분만 좋다능...^^
샌프란에선 볼수 없는 풍경이지만 동부의 가을 숲은 정말 아름다워요.
올핸 가을 탈 틈도 없이 바빴네요.
겨우 짬을 내어 훌쩍 여행을 다녀왔지만 가을은 이미 지나가 버렸더군요. ㅠㅠ
꼬장님도 그동안 많이 바쁘셨던 모양? ㅎㅎ
기형도네요. 시에서 멀어진 지 십 년이 넘은 것 같은데 '흩어진 그림자들...' 첫 구절에 기형도가 떠오르는 걸 보니 시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나 봐요.
근데 왜 요새는 시가 안 읽히는 거죠? 특히 새로운 시는 머리에도 안 들어오고 느낌도 없고 그래요.
우와~ 대단한 기억력! ^^
보라미나님은 詩 대신 다른 장르의 책들을 많이 읽으시잖아요.
그래도 잘 찾아보면 느낌있는 시들도 좀 있답니다. ㅎㅎ
저도 보통은 그때의 절망을 잊고 사는데 숲이 기억해 줄지 모르겠어요. ㅎㅎ
그냥 저 밑바닥에 차곡차곡..
ㅎㅎ 저도 거의 잊고 사는데 가을만 되면 병이 도져서...
아무래도 저 낙엽속에 묻어두어야 겠죠?
우와 미국의 숲도 알록달록 물들었네요~
기억하지 않을까요? 숲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있잖아요 ..
아 누가 빌려간 내 기형도 시집은 어디있을까요 ㅠ.ㅠ 내가 가지고 있떤 유일한 시집이었는데 ㅠ.ㅠ
네, 미국 동부의 숲도 알록 달록~ ㅎㅎ
카펠라님 말씀처럼 숲은 기억할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서 있을 그 숲은.
그나저나 제가 살면서 배운 것 한가지.
빌려준 책과 만화책과 CD는 거의 안 돌아온다... 입니다. ^^;;
사진보다 시가 아른거리는 지금이네요... 여운이겠죠? ^^
아마 가을의 여운~ 이겠죠? ^^
비밀댓글입니다
아마 노르웨이의 숲이란 바로 이런 숲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 있습니다.
분명 10월의 숲은 단풍들로 아름다울텐데 기형도 시인이 말한 10월의 숲은 제가 본 그런 숲이 아닐까.
숲에서 숲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