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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

기다림 If you were coming in the fall If you were coming in the fall, I’d brush the summer by With half a smile and half a spurn, As housewives do a fly. If I could see you in a year, I’d wind the months in balls, And put them each in separate drawers, Until their time befalls. If only centuries delayed, I’d count them on my hand, Subtracting til my fingers dropped Into Van Diemen’s land. It certain, w.. 더보기
마음 망설이는 마음 때로 그 강은 마음속 강이 되어 혹은 마음의 혹은 마음속과 마음의 그 강둑은 눈이 내리고 물과 기슭 사이로 밀물 썰물은 어두운 테두리를 떨구고 그래서 망설이는 마음은 그 물결을 보고 알아챈다 그것이 발견하게 될 어떤 유사성을 - 복잡한 어떤 이미지: 그 너머 거뭇한 사유의 끈으로 고정된 하얀 널판들의 어떤 것, 그래 저 너머 재빠르게 흘러가는 물의 움직이는 형상들, 그 전에 물결은 바뀔 것이고 다시 일어나겠지, 아마도. 윌리엄 칼로스 윌림엄스 中 The Mind Hesitant Sometimes the river becomes a river in the mind or of the mind or in and of the mind Its banks snow the tide falling a d.. 더보기
가을의 무늬 이 가을의 무늬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읽어 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더보기
나무 조용한 이웃 부엌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닥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황인숙 中 변이가 확산되면서 감염자 수가 다시 늘고 있다. 하루에 두어 번 산책하는 시간 외엔 다시 외출 자제 모드에 돌입. 창가에 앉아 세상 구경하는 고양이처럼 바깥과의 연결고리가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이 거의 전부인 요즘이다. 바람의 기분에 따라 다른 춤을 추는 나무, 해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 더보기
개나리 나리 나리 개나리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더보기
겨울 산책 저녁 숲 해가 함석지붕 위에 간신히 걸쳐 있을 때 숲에서는 천년 동안 불던 바람이 탈주를 시도한다 마른가지에 상처 입은 바람이 함석집 마당을 쓸면 건넌방에선 기침 소리가 비듬처럼 떨어진다 서산으로 넘어가지 못한 하루가 문고리에서 짤랑거리고 문풍지로 막아내지 못하는 미친바람은 이부자리로 파고든다 불러도 오지 않던 얼굴들이 천장의 꽃무늬로 번져 있다 낡은 전축 위로 해진 이불 홑청 위로 떨어진다 그리운 얼굴들로 얼룩진 이불은 비벼도 지워지지 않고 삶아도 빠지지 않는다 빽빽하게 서 있는 검은 나뭇가지 끝에 새들이 둥지를 튼다 바람에 묻혀온 기침 소리가 가지를 흔든다 새들은 날아가고 엉성한 둥지는 무너진다 마침내 찢기고 터진 나무의 살들이 부대끼며 타오른다 숲의 열기에 춤추는 어리고 뽀얀 깃털들, 달아난 새들이.. 더보기
코로나 時代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이문재 제 47회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中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은 그늘에 가려져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아닐까 이제껏 認知하지 못한 게 마음 아픈 항상 옆에 있을 것 만 같았던 사람이 당연한 줄.. 더보기
봄길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中 Home - Presidio Park - Crissy Field - Marina Green - Fort Mason - Home 지난 주말 이틀 동안 걸어 다닌 코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를 위해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키 높은 나무들이 있는 공원으로 식재가 아름다운 습지로 모래사장이 있는 바닷가로 열심히 걸었다 이른 시각에 날씨까지 흐려서 인지 인적도 드물었던 봄의.. 더보기
봄날이 지나 가고 있다 봄날은 간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착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인사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 더보기
느린 느림 정말 느린 느림 창밖에, 목련이 하얀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목련꽃 어린 것이 봄이 짜놓은 치약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이런, 늦잠을 잔 것이었습니다, 양치질할 새도 없이 튀어나왔습니다.그러고 보니 모든 뿌리들은 있는 힘껏 지구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태양 아래 숨어 있는 꽃은 없었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활짝 자기를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호객 행위였습니다. 만화방창, 꽃들이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은 봄날 아침, 나는 생명에 가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도심으로 빨려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유로로 접어들자 차가 더 막혔습니다, 흐르는 강물보다 느렸습니다. 느린 것은 느려야 한다, 느려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 마음뿐, 느림, 도무지 느림이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자유* 가 없는 것처럼.. 더보기
그해 여름의 일 여름의 일 - 묵호 연을 시간에 맡겨두고 허름한 날을 보낼 때의 일입니다 그 허름한 사이로 잊어야 할 것과 지워야 할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때의 일입니다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고 걸음이 질척이다 멎고 마른 것들이 다시 젖을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와 침과 욕과 돈을 길바닥으로 내던질 때의 일입니다 와중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니 갈 곳 없는 이들만 떠나가고 머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감고 있는 일로 당신으로부터 조금 이르게 멀어져 보기도 했던,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 박준 中 동해 바.. 더보기
들꽃 작은 들꽃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