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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책 저녁 숲 해가 함석지붕 위에 간신히 걸쳐 있을 때 숲에서는 천년 동안 불던 바람이 탈주를 시도한다 마른가지에 상처 입은 바람이 함석집 마당을 쓸면 건넌방에선 기침 소리가 비듬처럼 떨어진다 서산으로 넘어가지 못한 하루가 문고리에서 짤랑거리고 문풍지로 막아내지 못하는 미친바람은 이부자리로 파고든다 불러도 오지 않던 얼굴들이 천장의 꽃무늬로 번져 있다 낡은 전축 위로 해진 이불 홑청 위로 떨어진다 그리운 얼굴들로 얼룩진 이불은 비벼도 지워지지 않고 삶아도 빠지지 않는다 빽빽하게 서 있는 검은 나뭇가지 끝에 새들이 둥지를 튼다 바람에 묻혀온 기침 소리가 가지를 흔든다 새들은 날아가고 엉성한 둥지는 무너진다 마침내 찢기고 터진 나무의 살들이 부대끼며 타오른다 숲의 열기에 춤추는 어리고 뽀얀 깃털들, 달아난 새들이.. 더보기
코로나 時代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이문재 제 47회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中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은 그늘에 가려져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아닐까 이제껏 認知하지 못한 게 마음 아픈 항상 옆에 있을 것 만 같았던 사람이 당연한 줄.. 더보기
靜中念慮澄徹 (정중염려징철) 見心之眞體 (견심지진체). 閒中氣象從容 (한중기상조용) 識心之眞機 (식심지진기). 淡中意趣沖夷 (담중의취충이) 得心之眞味 (득심지진미). 觀心證道 (관심증도) 無如此三者 (무여차삼자). 고요한 때 생각이 맑으면 마음의 참된 모습을 볼 것이요, 한가한 때 기상이 조용하면 마음의 참된 활동을 알게 될 것이며, 담담한 가운데 취미가 깨끗하면 마음의 참된 맛을 얻게 될 것이니, 마음을 성찰하여 도를 체득하는 데는 이 세 가지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채근담 by 홍자성 집콕생활 111일 째 도를 닦는 마음으로 더보기
봄길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中 Home - Presidio Park - Crissy Field - Marina Green - Fort Mason - Home 지난 주말 이틀 동안 걸어 다닌 코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를 위해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키 높은 나무들이 있는 공원으로 식재가 아름다운 습지로 모래사장이 있는 바닷가로 열심히 걸었다 이른 시각에 날씨까지 흐려서 인지 인적도 드물었던 봄의.. 더보기
봄날이 지나 가고 있다 봄날은 간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착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인사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 더보기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어제의 노을 자체 자가격리 6일만에 바깥세상 구경 좀비 되는 줄 쇼생크 탈출이 왜 생각 날까 산책 중 사람간 6 피트 유지 코로나 라이프 삼시세끼 집밥 엥겔지수 장난 아님 덩달아 주량 상승 공상과학영화 초현실적 What strange times we live in 그래도 여전히 노을은 아름답다 더보기
Waters of March 세상이 어지럽다. 따뜻한 봄햇살이 내리쬐는 테이블에 앉아 한권의 책과 함께 맛있는 커피와 케익 한조각을 즐길 수 있는,그러한 소소한 일상으로 어서 돌아갈 수 있길... É pau, é pedra, É o fim do caminho É um resto de toco, É um pouco sozinho A stick, a stone It's the end of the road It's feeling alone It's the weight of your load It's a sliver of glass It's life, it's the sun It's night, it's death It's a knife, it's a gunA flower that blooms A fox in the brush A knot.. 더보기
Farewell 마지막으로 같이 간 여행이 되어버린 서울 근교의 코스모스 밭. . . . . . 노란 프리지어를 가장 좋아했던 그녀는 프리지어가 한창인 계절에 떠났다. 더보기
느린 느림 정말 느린 느림 창밖에, 목련이 하얀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목련꽃 어린 것이 봄이 짜놓은 치약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이런, 늦잠을 잔 것이었습니다, 양치질할 새도 없이 튀어나왔습니다.그러고 보니 모든 뿌리들은 있는 힘껏 지구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태양 아래 숨어 있는 꽃은 없었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활짝 자기를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호객 행위였습니다. 만화방창, 꽃들이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은 봄날 아침, 나는 생명에 가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도심으로 빨려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유로로 접어들자 차가 더 막혔습니다, 흐르는 강물보다 느렸습니다. 느린 것은 느려야 한다, 느려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 마음뿐, 느림, 도무지 느림이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자유* 가 없는 것처럼.. 더보기
아빠와의 추억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詩. 詩人. 詩集. 2017년 1월 26일 - 겨울 물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깨었다. 꿈이 물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깊은 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소리, 해저음. 시는 하나의 해저음이다. 2017년 12월 7일 - 숲에는 나무들이 아직 돌아가지 못한 바람들을 엮어서 겨울 목도리를 짜고 있었다. 국도에서 불어오는 차들이 몰고 가는 바람 소리. 언젠가 그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밤을 샌 적이 있었다. 2018년 4월 15일 ... 나는 귤을 쪼갰다. 귤 향! 세계의 모든 향기를 이 작은 몸안에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맡았던 모든 향기가 밀려왔다. 아름다운, 따뜻한, 비린, 차가운, 쓴, 찬,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향기. 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기 전에 나는 써야 하는 시들이 몇 편 있었던 것이다... 더보기
Insomnia 지금의 내 머릿속 같은 사진. 왜 이렇게 다중노출로 찍혔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좋아하지 않는 매뉴얼 공부 좀 해야 할 듯. 불면증이야 오래된 고질병이지만 이번엔 좀 심하다. 수명이 몇 년은 단축된 느낌. ㅠㅠ Mystery of Love by Sufjan Stevens (From Call Me by Your Name OST) 자장가 같은 느낌의 이 노래도, 수면 목장의 양들도, 재미없는 이론 책들도 소용이 없다. 음... 백과사전을 시도해 봐야 하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