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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유럽 - Paris I

Notre Dame Cathedral, Paris - September, 2019

 

친구의 청첩장을 받고 비엔나행 티켓을 알아보니 샌프란시스코발 직항 편이 없어 유럽 어디에선가 갈아타야 했다. 리스본에 들려 며칠 지내다 비엔나로 갈까? 아님 암스테르담? 헬싱키? 행복한 상상을 해보지만 처음 가보는 두나라를 여행하기에는 휴가가 너무 짧았다. 여행 스타일이 한곳에 집중해서 공략(?)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이제껏 유럽여행을 하면서 한나라 이상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여행 일정 앞뒤로 하루씩 파리에 머물기로 결정. 그렇게 13년 만에 가게 된 빛의 도시.  12월과 2월... 겨울의 풍경만 알고 있기에 청명한 가을 하늘을 잔뜩 기대했지만 파리에 있던 이틀 다 비가 내렸다. 그래도 가을비 내리는 파리는 분위기가 더욱 좋을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이 로맨틱한 도시의 골목을 바지런히 쏘다녔다. 

 

Shakespeare and Company, Paris - September, 2019

 

짐을 푼 후 근처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Shakespeare and Company 서점. 'Before Sunset'에서 제시와 셀린이 9년 만에 재회하는 장소이다. 굳이 영화 때문에 간 것은 아니었고 책을 사려고 들렸다. (이번 파리 방문은 20년 전 처음 파리를 갔을 때의 발자취 일부분을 따라가는 여행으로 정했기에...) 파리의 첫 영문서적 전문서점으로 알고 있는데 첫 번째 주인이 1919년 문을 연 후 1941년 문을 닫을 때까지 유명 작가들의 모임 공간이었다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작가들을 나열하다 보니 우디 알렌의 영화 'Midnight in Paris'에 출연했던 인물들. ㅎㅎ 암튼 이 책방 주인인 비치 여사는 영국과 미국에서조차 금지되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출판을 1922년 강행했다고 하니 정말 문화계에 큰 공헌을 한 셈. 하지만 이 서점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자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1951년 조지 휘트먼이 지금의 자리에 'Le Mistral' 이란 이름의 영문 서점을 오픈하는데 비치 여사는 그에게 Shakespeare and Company란 이름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그는 자신의 서점 이름을 Shakespeare and Company로 바꾸게 된다. 

 

Notre Dame Cathedral, Paris - September 2019

 

서점 바로 앞에는 센강이 흐르고 그 가운데 있는 시테섬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파리를 대표하는 이 건축물은 안타깝게도 지난 4월 보수공사 중 화재가 발생해 첨탑과 목조 지붕이 소실되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숭례문이 무너져내리는 뉴스를 보며 마음 졸이고 비통해하던 그때가 오버랩되는. ㅠㅠ 화재 후 프랑스 정부는 5년 안에 복원하겠다고 선언, 현대적으로 접근한 여러 가지 설계안이 공개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7월 프랑스 의회는 화재 이전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렇다, 노트르담 성당은 내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여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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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arais, Paris - September, 2019

 

센강변을 걸으며 스카폴딩이 올라가 있는 노트르담 성당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파리의 자유분방함이 가장 잘 느껴지는 동네, 마레지구. 이날 나머지 일정은 이곳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결정. 중세 분위기가 나는 건물들 사이를 걷고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은 뭘 파는 곳인가 기웃거리고 샌프란에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프랑스 브랜드의 샵에서 쇼핑을 하고 이러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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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uvre, Paris - Septemebr, 2019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로 비엔나를 가는 일정이기에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 했지만 욕심이 생겼다. 몇 달 전  돌아가신 I. M. Pei 옹 의 피라미드 야경이 보고 싶었기 때문. 그렇게 빗길을 걸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곳엔... 안 봤으면 많이 후회할 뻔한 조명이 비추는 피라미드가 황홀하게 서있었다.

 

Saint-Germain-des-Pres, Paris - September, 2019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 구글지도로 단시간, 단거리로 숙소에 도착할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다리 건너 메트로 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한단다. 그렇게 센강을 다시 한번 건너고 6th ARR. 동네의 문 닫은 갤러리 골목을 지나 가로등의 노란빛이 뿌옇게 내리는 길을 걸어 Saint-Germain-des-Pres역으로 향하던 중 지도를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 도토리가 잔뜩 달린 졸참나무를 발견한 다람쥐라도 된 것 마냥 잰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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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de Flore, Paris - September, 2019

 

생제르맹 데 프레 동네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 파리지엥 카페 문화의 양대 산맥 중 하나로 카페 레 되 마고와는 마주 보고 있다. 1880년대에 오픈한 이 카페는 벨 에포크 시대를 거쳐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작가, 철학가, 예술가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알퐁스 도테, 알베르 카뮈, 어니스트 헤밍웨이, 트루먼 카포티, 프랑수아즈 사강, 알베르토 자코메티, 파블로 피카소, 에디트 피아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글을 쓰고 토론을 하고 사색을 즐겼다. 재밌는 사실은 카뮈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사르트르가 보이면 가능한 제일 먼 곳에 앉았다고 한다. 둘은 서로 앙숙이었다고. 이런 역사를 지닌 카페는 매년 유망한 젊은 작가 (불어권에 한해)를 선정해 Prix De Flore라는 문학상을 수여하는데 상금뿐 아니라 일 년 동안 Pouilly-Fume white wine 한잔씩을 매일 제공한다고 한다. 늦은 밤 (9시쯤이었는데 아주 늦은 밤처럼 느껴짐) 에스프레소와 배 타르트를 먹으면서 파리의 첫밤을 마무리했다. 그 시절로 타임 슬립을 한다면 누구를 제일 만나고 싶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If you are lucky enough to have lived in Paris as a young man, then wherever you go for the rest of your life, it stays with you, for Paris is a moveable Feast" - Ernest Heming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