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무더웠던 8월 어느 날, 남도 답사로 떠난 1박 2일의 여행. 첫 번째 답사지인 병영성은 1417년 태종의 심복이었던 마천목 장군에 의해 축조되어 조선조 호남과 제주를 관할하는 육군 총지휘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화재로 소실되는데 방문했던 2015년에도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18세기에 세워진 병영 홍교가 유명하다 해서 보러 갔는데 선암사를 오르면 만나게 되는 승선교와 같은 무지개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 홍교 옆에 있던 익살스러운 벅수는 사실 1984년 도난(!) 당한 것을 1988년 복제해서 세운 거라고.
점심은 그 유명한 강진 백반.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다. 물론 지역 막걸리도 함께 주문 *^^*
백운동 별서 가는 길에 만난 녹차밭. 멀리 월출산이 보인다. 아쉽게도 백운동 별서는 안채 복원공사 중이라 부분밖에 보질 못했지만 대신 넓게 펼쳐진 차밭과 함께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덮힌 듯한 광경은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눈이 내린 무위사가 아름답다고 해서 아껴두었던 곳인데 어찌하다 보니 무더운 여름에 첫 방문을 하게 되었다. 무위사 초입의 수수한 계단길은 없어진 지 오래고 소박한 절집의 분위기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했지만 국보인 - 어딘지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 극락보전의 아름다움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사람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과 서까래의 디테일 그리고 산 능선의 곡선과 딱 맞아떨어지는 천왕문의 지붕선을 발견하는 순간 느끼는 감동이란!
저녁은 소고기 + 키조개 + 표고버섯의 장흥 우삼합. 초딩 입맛을 가진 나로서는 이 조합이 너무나 환상이었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소주이지만 소주를 잘 못 마시기에 그 차이를 모르는 일인. ^^;;
아침 산책 중 만난 잔교는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고. 아침이라 했지만 해가 벌써 중천에... ^^;; 아점으로 먹은 맑은 키조개탕
송백정 배롱나무 군락지. 1934년 그 당시에는 희귀목이었던 배롱나무를 연못 주변에 심었다 하는데 지금은 백일홍이 피는 여름이면 장관을 이룬다.
장흥 고영완 가옥의 곡선을 그리며 오르는 돌계단은 너무나 이뻤고. 부춘정 원림의 정자는 학문을 가르치거나 마을모임을 가졌던 곳이라는데 주변의 경치로 휴식하기에 최고였을 듯. 동백정은 조선조에 지어졌다가 고종 때 중건했다 하는데 詩會등을 열었던 곳이라고 한다.
여러 해 동안 가고 싶은 곳 리스트 중 하나였던 보성 강골마을을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담쟁이로 덮인 돌담길에 30여 채의 초가집과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옛 마을은 하룻밤 정도는 묵어보고 싶은 곳이었다. 교통이 편하지 않은 데다 마을 앞으로는 대나무 숲으로 뒤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특성상 개발의 바람이 불지 않고 전통한옥마을로 보전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특이하게 두 고택 사이에 있는 소리샘이라 불리는 우물 옆 담장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우물에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를 집안에서 듣기도 하고 또 밖의 사람들은 집안을 엿보기도 했다는데... 암튼 재밌는 발상.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강골마을 뒷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열화정이었다. 1845년 후진양성을 위해 지어졌다는 정자는 기쁠 悅 말할 話 정자 亭이라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는 전통조경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정원과 녹색의 개구리밥으로 덮여 있는 연못을 바라보며 때마침 불어오는 대나무 숲 사이를 가르는 바람소리에 어느새 무더위도 잊어버리고 여행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