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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 - 奈良

Nara - January, 2019

 

새해 첫 여행을 고민 끝에 간사이 지방으로 정했을 때 이번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奈良)를 꼭 가보리라 결심했다.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떠났지만 기차를 한번 갈아 탄 후 나라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살짝 지나 있었다.  미리 정해 둔 점심 장소는 鹿の舟-かまど(shikanofune - kamado), 직역하자면 사슴의 배- 부뚜막. 식당 앞에 걸려 있는 공은 삼나무 가지로 만들어진 것인데 杉玉(sugidama)라고 부른다. 옛날 사케를 만드는 주조장에서  11월 즈음 스기다마를  문 앞에 달면 '올해 수확한 쌀로 사케를 만들기 시작한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초록의 공이 시간이 지나 완전한 갈색으로 바뀔 때쯤이면 술이 맛있게 익었다는 신호. 이제는 이 삼나무 공을 주조장뿐만 아니라 고급 사케를 파는 가게나 식당 앞에도 매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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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kanofune, Nara - January, 2019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갓 지어낸 솥밥에 간단한 반찬으로 백반을 파는 식당. 가지된장구이를 엄청 좋아해서 메인으로 고기반찬이 아닌 가지 요리를 골랐다. 소박하고 정갈한 가정식 백반의 맛은...  첫끼부터 미각이 호강!  한편에선 부엌용품과 식재료등을 팔고 있는, 식당 겸 상점에서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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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zuri Cafe, Nara - January, 2019

 

식당 건너편엔 그리 크지 않은 정원을 같이 나눠쓰고 있는 囀り(saezuri)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새들의 '지저귐'이란 뜻의 카페는 로고부터 범상치 않은데 안에 들어서면 북유럽풍의 소품과 그릇 등을 파는 공간과 차와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계절 디저트인 밤이 들어간 케이크와 드립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겨울이라 조금은 삭막한 정원을 바라보며 다음 일정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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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iji, Nara - January, 2019

 

나라 공원 입구에 있는 푯말엔 사슴들을 주의하라고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하고 있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옆에 와서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꽃사슴. 그 눈길에 안 살 수 없는 사슴 센베. 문제는 얘네들이 어떻게 아는지 과자를 들고 있으면 한꺼번에 몰려든다. 살짝 겁이 날 정도로 들이대는 아이들은 먹성도 좋아 아까 식당에서 산 작은 접시들이 들어있는 종이가방까지 뜯어 잡수셨다. ㅠㅠ 8세기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에 (그래서 그 시대를 나라시대라고 부른다) 사슴이 많은 이유는 신이 흰사슴을 타고 내려왔다는 일본의 신화때문. 그래서 나라의 사슴은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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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to - January, 2019

 

겨울의 해는 길지가 않다. 종일 흐리고 으실으실 추웠던 여행의 첫날은 금세 어둑어둑해져 발길을 서두르게 만든다. 교토로 넘어가기 전 하룻밤 정도는 호텔이나 료칸이 아닌 일본 시골집에서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예약해 두었던 나라와 교토 중간 (사실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작은 산골마을에 노부부가 하는 민박집! 하지만 중간에 기차를 한번 갈아타는 것을 놓치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바람에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던 할아버지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시게 하는 실례를. ^^;;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산골집의 주변은 이미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세련된 커트머리를 하신 할머니는 따뜻한 녹차와 이쁜 유리잔에 와인을 한잔 내주셨고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젊은 시절 회사일로 영국 시골에서 몇 년을 사셨다고. 노후에 민박을 하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즐기시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난방시설이 열악한 일본 주택의 구조상 집안이 너무너무 추운 탓에 이불 안에서도 오들오들 떨며 한국 온돌의 우수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겨울의 민박체험.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마당을 둘러보니 봄이나 가을에 며칠 여유있게 묵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노부부께 꼭 다시 찾아오겠노라 약속을 하고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