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여름 詩 둘

엄마랑 먹은 콩국수 @ 자하 손만두 - August, 2018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가게문을 닫고 우선 엄마를 구하자 단골이고 매상이고 그냥 다 버리자 엄마도 이젠 남의 밥 좀 그만 차리고 귀해져보자 리듬을 엎자 금(金)을 마시자 손잡고 나랑 콩국수 가게로 달려나가자 과격하게 차를 몰자 소낙비 내리고 엄마는 자꾸 속이 시원하다며 창을 내리고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엄마라는 솥과 번개 아름다운 갈증 엄마 엄마 왜 자꾸 웃어 바깥이 환한데 이 집은 대박, 콩이 진짜야 백사장 같아 면발이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하더라 아주 낡은 콩국숫집에 나란히 앉아서 엄마는 자꾸 돌아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오이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입안을 푸르고 나는 방금 떠난 시인의 구절을 훔쳤다 너무 사랑해서 반복하는 입술의 윤기, 얼음을 띄운 콩국수가 두 접시 나오고 우리는 일본인처럼 고개를 박고 국수를 당긴다 후루룩후루룩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푸르륵 말들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고 거꾸러지는 면발에 죽죽 흥이 오르고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나도 너처럼, 뭐라고? 나도,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예민하게 코끝을 국화에 처박고 싶어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살 때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 엄마랑 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며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中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콩국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후 겨울에만 한국을 나가다 보니 맛있는 콩국수를 먹은 지 오래다.
두유나 콩물을 사다 집에서 해보지만 진한 콩물의 그 맛도 안 나고 여름이 덥지 않은 이곳에선 분위기도 안 산다.
콩국수는 역시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그런 날 얼음 동동 띄워 시원하게 먹어야 제맛. 길게 죽죽 찢은 빨간 고춧가루 범벅의 배추김치와 함께.



무위사, 강진 - August, 2015


무위사

강진 차밭 지나다
푸른 절 배롱나무 아래서
또 우는 내 옛날을 보았다
지는 꽃 흔들리는 바람에 들어
높이 자란 등뼈 쓰다듬는 일로
하루를 다 보냈다

이윽고 저녁이 왔을 때
다행히 길은 멎고 다행히 해는 져서
모든 슬픔이
홀연 낮은 별 아래서 더 빛나는 섭리를
우물처럼 바라봤다

아주 지는 꽃
끄트머리처럼 내 그늘이 밝았다 


류근  <어떻게든 이별> 中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한여름, 전통조경 수업의 답사로 갔었던 남도.
백운동 원림에서 나와 강진의 푸른 차밭을 지나고 병풍처럼 펼쳐진 뾰족한 월출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들어선 무위사.
초행길이었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에서도 읽었었기에 기대를 안고 갔지만 여느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거듭된 보수와 중창등으로 소담한 사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휑해진 가람 터에 꿋꿋이 서있던 극락보전이 안쓰럽게 느껴진 건 나만의 감상이 아니었을 듯.
문득 詩人은 예전 무위사의 모습을 기억하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