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고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가장 많은 미움을 샀던 인물처럼
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울에 빠져 죽었다던 그와는 달리
반대편에 잘 도착했는데
돌아보니 사방이 꽁꽁 얼어 있었고
그애는 여름에 죽었겠구나
죽은 이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흐르는 땀을 연신 닦다가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검고 아득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고
돌멩이를 던져볼까
아서라, 죽은 이는 다시 부르는 게 아니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 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中
꿈과 현실, 삶과 죽음, 혹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인 징검다리.
…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
이 마지막 詩句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끝나도 깊어지는 마음이란 그리워하는 마음이겠지.
겨울이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워지면 두부를 큼지막하게 잘라 구워 봐야겠다.
너를 보내는 숲
빈 방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놓을 줄도 알아야 하다는 말을 가슴에 돌처럼 얹고서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흩어진 옷가지들을 개키고
몇 줄의 문장 속에 너를 구겨 담으려 했던 나를 꾸짖는다
실컷 울고 난 뒤에도
또렷한 것은 또렷한 것
이제 나는 시간을 거슬러
한 사람이 강이 되는 것을 지켜보려 한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들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흙을 퍼 나르는
분주한 발소리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분명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사방에서 장정들이 몰려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파고 파고 파고
심지가 타들어 가듯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가만 보니 네 침대가 사라졌다
깜빡 잠이 든 사이
베개가 액자가 사라졌다
파고 파고 파고
누가 누구의 손을 끌고 가는지
잠 속에서 싱싱한 잠 속에서
나는 자꾸만 새하얘지고
창밖으로
너는 강이 되어 흘러간다
무릎을 끌어안고
천천히 어두워지는 자세가 씨앗이라면
마르지 않는 것은 아직
열려 있는 것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린다
세상 모든 창문을
의미 없이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안희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中
...
<너를 보내는 숲>은 어떤 시인가요?
상실, 이별에 대한 이야기에요. 남겨져 있는 사람의 몫에 대해서요. 저는 상실이나 죽음을 품고 간직하고 복기하면서 사는 편이어서 그런 호흡으로 쓴 시들이 많아요. 그런데 두 번 다시는 이런 시를 못 쓸 것 같다고 느끼는 시 중에 한 편이에요. 죽은 사람의 방을 치우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죠.
...
시인과의 인터뷰 中 (출처: 시네마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