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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여행이야기 - 청산도

남도의 절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보길도를 가려는 계획이었다.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을 걷고 도치미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겨울의 보길도는 이동이 만만치 않다는 주지스님의 말씀에 급변경하게 된 나의 겨울 섬여행. 어릴적 부모님을 따라 다도해, 남해등을 다녀왔지만 붉은 다라(대야)에 담겨있던 산낙지들이 먹물을 뿜어내는 모습에 신기해 하던 곳이 완도였는지, 통통배를 타고 멀미를 해서 화장실 들어갔다가 바다로 뻥뚫린 바닥을 보고 깜짝 놀랬던 곳이 남해의 어느 섬으로 가던 뱃길이었는지, 기억들이 조각조각 나뉘어져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다시 가고 싶었던 다도해의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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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1 - February, 2015

 

유채꽃이 만발한 청산도가 아름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나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2월의 청산도의 모습이 궁금했다.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청산도 도청항까지의 뱃길은 약 50분. 겨울도 그리 춥지는 않다는 섬마을에 도착을 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는 여러 슬로길이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좋은 섬이다. 무계획의 여행이었기에 급하게 잡은 민박집 아버님이 추천해주신, 숙소로 갈 수 있는 해안선길로 파란 화살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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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4 - February, 2015

 

낭길은 해안절벽을 따라 나 있는 길인데 그 풍광을 구경하느라 저절로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선을 생각나게 하는 1.8km의 코스를 중간 중간 사진을 찍으며 걷다보니 거의 한시간 걸려 도착한 권덕리 마을. 이틀밤을 보낼 민박집 앞엔 매화꽃이 반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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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명품1길 - February, 2015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섬 탐험에 나섰다. 우선 범바위길로 시작해서 역시 해안선 길인 명품1길을 걸었다. 소나무 한그루 서있던 곳은 마치 17 miles Drive에 온 것 같았고 또 다른 해안선은 Big Sur와 너무 닮아있었다. 아름다웠던 명품1길의 끝은 장기미 해변. 이곳에도 있었다! 공룡알(몽돌) 해변이. 보길도 가면 보러가려 했던 공룡알 해변이었다. 근데 몽돌이란 이름도 이쁘지만 공룡알이라니,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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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5 - February, 2015

 

장기미 해변에서 잠시 파도소리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슬로길 5 코스를 걸으며 섬 안쪽으로 이동했다. 4계절 밭농사가 가능하다는 청산도에는 이 섬마을에만 있는 농업유산, 구들장 논이 있다. 경사진 곳에 층층이 만들어진 논은 여느 계단식 논과 비슷하지만 돌담으로 쌓아올려 만든 수로는 구들과 같은 역할을 한다하여 구들장 논이라 불린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이곳.  논과 밭을 돌아 도착한 곳은 폐교를 개조해 만든 느린섬 여행학교. 숙박시설을 겸하고 있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수 있다. 한눈에 봐도 건강밥상으로 보이는 점심메뉴는 탕, 몰, 고시래기등 처음 먹어보는 반찬들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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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6 - February, 2015

 

2월의 청산도는 유채꽃 대신 봄동들이 꽃처럼 만발하다.  슬로길 6 코스의 다랭이길을 걸어가면 돌담길로 이어진다.  그곳에 위치한 돌담으로 유명한 상서리마을은 꼭 보고 싶었던 곳. 집마당에 있었던 외양간 안의 소가 빼꼼이 쳐다본다. 흐려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오는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비수기라 문이 닫혀있는 상서돌담마을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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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7 - February, 2015

 

겨울의 신흥리 풀등해변은 비까지 내리니 더욱 스산하다.  슬로길 7코스의 들국화길을 지나 (들국화의 1집 앨범을 들으며 걸었음 더 좋았겠다란 생각을 하며) 목섬까지 갔다. 추락위험 푯말을 봤지만 왠지 더 내려가 보고 싶어지는 건 무슨 심리? 목섬 끝에 있는 바위섬. 하지만 위험하다니 여기 까지만 내려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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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리 마을 - February, 2015

 

다시 권덕리 마을로 돌아와 동네구경을 하는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패딩에 모자에 마스크에 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섬마을의 비바람은 매서웠다. 산책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니 민박집 어머님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자리를 내주시며 차려주신 저녁밥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술상으로 바뀌었다. 직접 담그셨다는 솔잎주를 마시며 청산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청산도 슬로길 지도 (출처:www.wando.go.kr)

 

epilogue: 민박집 어머님이 9월의 청산도 생선들이 기가 막히게 맛있으니 또 오라 하셨지만 결국엔 다시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