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아직 벚꽃이 피기 전인 3월 말, 여럿이서 의견 투합하여 남해를 내려가기로 했다. 서울서 출발, 경부(1) - 통영대전(35) - 광주대구(12)를 타고 남원까지 달려 첫 번째 stop, 실상사에 도착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이 절은 산속 깊숙이 있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널따란 들판에 덩그러니 있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조선 세조 때 화재로 전소한 후 순조 때 중건한 실상사에는 단일 사찰로는 제일 많은 보물이 있다고 한다. 사찰을 둘러본 후 입구 건너편에 있는 찻집에서 차 한잔씩 마시며 화반 위에 떠있는 산수유꽃을 보니 산수유마을이 궁금해진다.
60번 지방도 - 광주대구(12) - 19번 국도를 달려 두 번째 stop인 구례의 산수유 마을에 도착했다. 돌담과 산수유꽃의 어우러짐이 그림 같았던 반곡마을. 아마 혼자 떠나 온 여행이었으면 이곳에서 며칠 더 묵었을지도 모르겠다.
순천완주(27) - 남해(10) - 19번 국도를 타고 110km 정도를 더 달려 늦게 도착한 남해에서의 첫 저녁식사. 서대회무침이란 걸 처음 먹어봤다. 경상도에 오니 소주는 좋은 데이. ^^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를 위해 매운탕은 지리로 시켜주는 친구. (하지만 매운탕을 생선탕이라고 말했다가 두고두고 놀림 받음) 여럿이서 떠나는 여행의 장점은 음식을 끼니때마다 푸짐하게 챙겨 먹을 수 있다는 점. ㅎㅎ
둘째 날
일찍 일어나 숙소 앞을 산책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여수라는데 가본 적이 없네... (생각보다 가까워서 놀람) 미역 말리는 모습도, 통통배가 지나는 풍경도 정겹다. 아침 산책 후 먹는 조식은 뭘 먹어도 맛나다.
구불구불 해안선 1024번 지방도를 따라 본격적으로 남해 탐험에 나섰다. 해수욕장들을 지나고 다랭이 마을을 보고 이름 모를 바닷가를 바라보고... 기억엔 어릴 적 부모님과 남해대교를 건너 충렬사만 보고 갔었던 터라 나에겐 처음 보는 풍경들... 아, 남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바닷가는 은모래 비치. 그림자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하는 시각에 도착했는데 그 모래사장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왠지 마음을 아련하게 하는 듯했다. 여름에 오면 분위기가 또 다르겠지... 살짝 배고팠던 우리는 설탕 잔뜩, 케첩 듬뿍 핫도그 하나를 한입씩 나누어 먹고. (내 인생 두 번째로 맛있었던)
19번 국도로 계속 해안을 따라 이동하여 미조항으로 왔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한적한 작은 포구는 소슬한 기운이 감돌고... 동네를 둘러보다 어느 횟집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회 - 구이 - 탕' 순이다. (요리하는 속도에 따라 나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음식의 온도로도 먹기에 좋은 순서) ㅎㅎ
마지막 날
아침에 서둘러 금산의 보리암에 올랐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조선을 건국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전국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라고 한다. 해수관세음보살상 앞에는 이른 시각부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금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사진에선 잘 안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해...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소원 한 가지 정도는 빌었던 듯. ^^;;
남해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죽방멸치로 만든다는 멸치쌈밥. 소문난 맛집인지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갔다. 멸치회무침으로 시작, 갈치구이, 그리고 김치가 들어간 멸치 찜. 이번 여행에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잔뜩이다. 갈길이 멀어 점심 후 바로 출발. 3번 국도로 창선도 해안선을 지나 삼천포 대교를 건너 통영대전 (35) - 경부 (1)를 타고 서울까지 쭈욱 달렸다.
열심히 올라오다 보니 끼니 때를 놓쳐 서울 도착 후 추억의 고깃집에서 늦은 저녁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오래간만에 함께 소중한 시간들을 보낸, 혼자하는 여행과는 또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