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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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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느린 느림


창밖에, 목련이 하얀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목련꽃 어린 것이 봄이 짜놓은 치약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이런, 늦잠을 잔 것이었습니다, 양치질할 새도 없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뿌리들은 있는 힘껏 지구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태양 아래 숨어 있는 꽃은 없었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활짝 자기를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호객 행위였습니다.

만화방창, 꽃들이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은 봄날 아침, 나는 생명에 가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도심으로 빨려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유로로 접어들자 차가 더 막혔습니다, 흐르는 강물보다 느렸습니다. 

느린 것은 느려야 한다, 느려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 마음뿐, 느림, 도무지 느림이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자유* 가 없는 것처럼, 정말 느린 느림은 없었습니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윤호병, 「아이콘의 언어」, 문예출판사, 2001

 

 

 

이문재  < 지금 여기가 맨 앞 >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된 가게도 찾기 힘들 정도로 개발을 좋아하는 도시에서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는 듯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두들 바쁘게 살다 보면 놓치게 되는, 시인의 말처럼 너무 나만 사용했던 삶에서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살았음 좋겠다. 주위에 빗대지 말고 자신의 속도대로 살면서 행복했음 좋겠다.

(저 외벽에 칠을 안한 부분은 분명히 디자인적인 이유 일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