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3일째 아침, 서둘러 숙소를 나와 가을의 공기가 조금씩 내려앉은 듯한 거리를 부지런히 걸었다. 항상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유명 커피하우스에 가기 위해서인데 가는 도중 오래된 Arcade를 발견,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본다. 찾아보니 1860년에 지어졌다는 이곳은 부티크, 바, 카페들이 모여 있는 쇼핑 아케이드. 아름다운 공간에 정신이 팔려 사진을 찍다 Ferstel Passage를 나오니 바로 오늘 아침의 목적지가 나왔다.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 센트럴. 다행히 아침 일찍이라 줄은 없었다. 1876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원래 은행과 주식거래소가 있던 자리다. 그래서인지 외관도 상당히 멋스러운데 건물의 이름은 Palais Ferstel. 건축가 Heinrich von Ferstel의 이름을 딴 건물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졌다. 실내도 외관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높은 아치형 천장의 장식과 디테일은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19세기 말 카페 센트럴은 많은 작가, 정치가, 건축가등의 모임 장소로 쓰였는데 Peter Altenberg, LeonTrotsky, Adolf Hitler, Adolf Loos, Sigmund Freud 등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주문한 식사는 'Classic Viennese Breakfast'. 롤빵, 크로와상, 반숙 계란, 버터 & 잼, 그리고 따뜻한 음료 하나가 나온다. 난 음료로 Melange를 시켰다. 아침식사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분위기에 취해서일지도 모르지만. ^^
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비엔나 구시가지를 걸었다. 황금색의 기념비는 1694년 완공된 'Plague Column'인데 레오폴드 1세가 페스트 전염병 종식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기념비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면 아마 또 다른 느낌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ㅠㅠ 잠깐 들린 Cafe Demel에서는 선물할 초콜릿들을 사고 The Hofburg (합스부르크 왕궁)을 지나가면서 슬~쩍 보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이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의 동상을 중심으로 닮은꼴인 두 건물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하나는 미술사 박물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나의 목적지는 유럽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는 미술사 박물관. 1891년에 완공된 신 르네상스 양식의 미술관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인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유적품들과 중세 미술, 르네상스 및 바로크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안에 들어서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우선 입구의 웅장한 Rotunda와 Mandala 느낌의 대리석 바닥이 눈길을 끈다. 천장의 섬세한 문양, 금박 장식, 디테일의 세세함 들이 무척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계단을 올라가면 마주치는 대리석 조각은 <Theseus Defeats the Centaur>으로 Antonio Canova의 작품이다.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Mihaly Munkacsy의 <The Triumph of the Renaissance>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고 기둥과 아치 사이의 공간을 자세히 보면 여인들의 그림이 있는데 바로 Gustav Klimt의 프레스코 벽화이다. 창문 너머로는 광장과 건너편의 자연사 박물관이 보인다. Cupola Hall에 있는 Museum Cafe는 아마도 내가 본 미술관 카페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지 않을까. 아쉽게도 미술관에서 작품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는 누리질 못했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유럽 3대 미술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소장품들이 대단했다. 미술사 책에서 본 라파엘, 틴토레토, 루벤스, 반 다이크,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등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피터 브뤼겔 1 의 그림들이었다. 알고 보니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의 브뤼겔 컬렉션은 세계 최고란다. 밑에 그의 그림들을 모아보았다. (조명의 반사로 똑바로 찍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음)
1. The Tower of Babel, 1563
2.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1559
3. Children's Games, 1560
4. The Procession to Calvary, 1564
5. The Return of the Herd (Autumn), 1565
6. Hunters in the Snow (Winter), 1565
7. Gloomy Day (Early Spring), 1565
브뤼겔 작품들 감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후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작품들을 둘러보고 공예품과 이집트 유적물을 보고 나니 4시간 반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쉽지만 미처 보지 못한 예술작품들도, 아름다운 카페도 다음을 기약하고...
미술관에서 나와 Albertina Museum 발코니에 있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상을 찾아갔다. 'Before Sunrise'에서 제시가 셀린에게 W.H. Auden의 詩, 'As I Walked Out One Evening'을 읊어 주는 장소이다. 동상 밑 계단에 앉아 피곤한 다리를 쉬며 영화 속 그 장면을 잠시 생각해 본다.
...
But all the clocks in the city
Began to whirr and chime:
'O let not time deceive you,
You cannot conquer time.'
...
의도치 않게 점심을 건너뛰게 되어 이른 저녁을 먹으러 추천받은 카페를 찾았다. Cafe Diglas의 오늘의 정식(?) 중 하나였던 연어구이를 먹고 그날의 디저트였던 브레드 푸딩과 멜랑제로 마무리했다. 언젠가 비엔나를 다시 방문하게 되면 꼭 다시 가서 먹고 싶을 만큼 연어구이와 디저트는 훌륭했다.
저녁에 퇴근 한 친구 커플을 만나 간 곳은 비엔나의 와이너리, 호이리게 2 였다. 대도시에 Winery가 있고 와인 생산을 하는 세계 유일의 도시, 비엔나.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시켜 먹을 수 있는 호이리게에서 이틀 후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 커플과 늦은 밤까지 즐거운 수다 삼매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