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정원이란 뜻의 이름에 걸맞게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숲길과 멋진 건축물을 즐기며 사색을 할 수 있었던 10月의 어느 날.
치허문이란 이름의 수목원 입구를 지나 천천히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여러 풍경들. 가을 단풍이 점점 늦어지는 탓에 기대만큼의 단풍을 만나기는 힘들었지만 이곳은 어느 계절에 가도 멋있을 그런 곳이다.
'깊은 생각을 담은 못'이란 뜻의 연못 너머에 자리 잡은 건물. 작은 식당이 있는 이 건물에서 미리 예약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연못 건너편엔 벤치들을 놓아 건물 앞 무대에서 하는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많은 현대 건축가들이 물을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물이 주는 평온함과 고요함이 기하학적인 건축물과 만났을 때 주는 대조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에 비추는 반영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思潭의 경우 건물의 반영뿐만이 아니라 주위 자연경관의 반영 또한 하나의 작품이었다.
私談이지만 산속에 위치한 대부분의 한국사찰들은 계곡이나 연못, 시냇물의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구조가 많다. 이는 차안에서 피안으로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내 기억 속 대부분은 건너갈 때 비추는 자연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선조들의 심미안을 느낄 수 있었다.
사담 뒷편을 올라가면 만나는 억새 언덕.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 그리고 사유원 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전망대, 첨단.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작은 Chapel은 김익진 선생의 가톨릭 번역서 <내심 낙원>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동양철학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통해 찾아가는 마음의 정원'이란 뜻을 생각하며 앉아있으니 이 작은 공간의 간결함에 압도되어 경외심마저 든다.
맑은 정원이란 뜻을 가진 한국 전통 정원은 사유원의 설립자가 평생 수집한 소나무와 석재가 자리하고 있다. 존경하는 조경가 정영선 씨가 정원 설계를 맡았고 설립자의 호를 따 지어진 사야정이란 정자는 박창열 씨의 작품이다.
발길 닿는 대로 산길을 걷다 문득 돌아보니 저 멀리 내심낙원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 광활한 수목원 안의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하나하나 지어졌을지가 느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