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 가을 詩 둘 평화로운 산책 저녁 숲길이 별안간 가을을 맞이했을 때 가을, 나를 따라온 긴 그림자 하나 문득 사실적이로구나 시퍼런 가슴도 때로 추억의 철퇴를 맞고 비틀거리는 첨탑들도 일몰 쪽으로 달려간다 이런 시간엔 돌아오는 모든 것들이 눈물겹게 보인다 입술을 적신 새 떼와 손금을 버린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 그 시간 끝에 매달려 있는 저 불온한 시계추들 그래, 나는 지금 걷고 있는 중이야 그 길 끝에는 호수가 있다 빨간 닭장과 구름들이 중얼거리며 서쪽으로 가볍게 흘러가고 모든 외마디의 빛깔들이 한끝을 향해 핑핑 글썽이며 돌아오는 시간 노을의 한때를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온 물살들이 가장자리에서 입술을 반짝이네 나 좀 봐, 나 좀 봐 이런 순간에 나는 평화를 평화, 라고 솔직하게 발음해 보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교과서.. 더보기 이 겨울 詩 둘 밤의 발자국 저녁내 펑펑 눈 쏟아지고 깊은 밤 보안등 불빛 아래 나무들 분분 꽃 날리고 그네도 벤치도 땅바닥도 하얗게, 하얗게 덮인 놀이터 왔다가 돌아간 작은 발자국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보다 먼저 다녀간 고양이 황인숙 中 몇년 전 우연히 재건축을 앞둔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내 길고양이들을 위한 뱃지를 산 적이 있다. 올 봄, 영화 (2001), (2012)를 만든 정재은 감독이 철거 공사 직전인 2019년 12월까지 2년여 동안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위한 모임 "둔촌냥이"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를 개봉했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둔촌 주공아파트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2018)이란 다큐를 보면서 오랜 세월, 많은 추억과 정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번 .. 더보기 나무 조용한 이웃 부엌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닥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황인숙 中 변이가 확산되면서 감염자 수가 다시 늘고 있다. 하루에 두어 번 산책하는 시간 외엔 다시 외출 자제 모드에 돌입. 창가에 앉아 세상 구경하는 고양이처럼 바깥과의 연결고리가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이 거의 전부인 요즘이다. 바람의 기분에 따라 다른 춤을 추는 나무, 해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 더보기 이전 1 다음